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 이후 송파구 잠실동 주요 아파트 단지들의 거래가 완전히 중단된 상황이다. 호가 조정에도 매수자들은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각종 경제·정치적 불확실성이 더해져 당분간 시장 회복은 어려울 전망이다.
잠실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김모씨(53)는 요즘 심심하다. 지난 2월만 해도 문의 전화가 하루 십여 통씩 걸려왔는데, 한 달 새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진 손님으로 북적였는데, 지금은 하루종일 앉아서 뉴스나 보고 있어요. 지난 한 달간 계약서에 도장 한 번 못 찍었습니다."
허가구역 지정 후 '잠실 빅3' 한 달째 계약 전무
정부가 3월 말 송파구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한 후 잠실동 주요 아파트 단지들의 매매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한국부동산원과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잠실 빅3'로 불리는 잠실엘스, 리센츠, 트리지움 아파트는 지난 2월 13일부터 3월 23일까지 각각 49건, 71건, 45건 등 총 165건의 거래가 이루어졌으나, 허가구역 재지정 이후 한 건의 매매도 성사되지 않았다.
"규제 발표 직후에는 '어차피 실수요자는 문제없다'며 문의가 조금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끊겼어요." 잠실새내역 인근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매매할 생각이 있던 분들도 '좀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로 돌아섰다"고 전했다.
수억 떨어진 호가에도 매수세 빠져...관망 심리 고조
더 놀라운 것은 호가 하락에도 매수자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잠실엘스 전용 84㎡는 지난 2월 평균 27억원대에 거래됐으나, 현재 호가는 약 3억원 가량 내려간 24억원선이다. 그럼에도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가격이 떨어져도 사려는 사람이 없어요. 불안한 심리가 지배하고 있어요." 10년 넘게 잠실동에서 중개업을 해온 C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요즘엔 매도자들도 급매물을 내놓지 않고 버티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송파구 전역으로 봐도 상황은 심각하다. 지난 2월 한 달간 송파구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812건이었으나, 4월 들어 지난 20일까지 집계된 거래량은 고작 68건에 불과하다. 92% 급감한 수치다.
규제 효과만이 거래 감소의 원인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부동산114 수석연구원 이모씨는 "허가구역 외에도 향후 금리 결정, 조기 대선, 대출규제 강화 등 불확실성 요인이 산적해 있어 매수심리가 위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6월 예정된 조기 대선은 현 부동산 정책의 향방을 가를 중요 변수로 꼽힌다. 정권 교체시 부동산 정책 변화 가능성을 고려해 관망세가 짙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어요. 혹시 정권 바뀌면 규제가 완화될 수도 있잖아요?" 잠실동 아파트 매수를 검토하다 최근 관망으로 돌아선 예비 구매자 박모씨(42)의 말이다.
금융권 규제도 변수다. 7월부터 적용될 예정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강화는 대출 여력을 더욱 축소시킬 전망이다. 시중은행 대출 담당자는 "지금도 잠실 같은 고가주택은 대출이 까다로운데, DSR 규제 강화되면 자금력 있는 구매자만 거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금리·정책 불확실성 겹쳐 상반기 정상화 기대 난망
이런 시장 냉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부동산 시장 분석가 정모씨는 "대선 이후 하반기는 돼야 시장이 정리될 것"이라며 "당분간 거래량 감소와 가격 조정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잠실동 주민 김모씨(55)는 "잠실은 여전히 서울 최고의 입지를 갖춘 곳"이라며 "일시적 침체일 뿐, 장기적으로 가치가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보였다.
거래 시장이 얼어붙은 것과 대조적으로 오히려 세입자들의 움직임은 늘고 있다. 잠실 인근 D공인중개사사무소는 "매매는 끊겼지만 전세·월세 문의는 오히려 늘었다"며 "매수 대신 전세로 관망하려는 수요가 증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업계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 당초 목표했던 '투기 수요 차단'에는 성공했으나, '실수요자 보호'라는 측면에서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부동산분석협회 관계자는 "과도한 규제는 오히려 실수요자들의 주거 이동마저 막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정책 조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당분간 잠실동 아파트 시장은 거래 공백 상태가 이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규제와 경기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거래 절벽과 가격 조정이 불가피하다"며 "최소 대선 이후인 하반기는 돼야 시장이 정상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