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거래 침체가 이어지며 공인중개사 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 올해 3월 신규 개업자 수는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1000명 아래로 떨어졌고, 개업보다 폐업이 많아져 전체 중개사 숫자도 25개월째 감소 중이다. 권리금 회수 어려움에 폐업도 쉽지 않은 '진퇴양난'에 빠진 중개사들의 암울한 현실을 들여다봤다.
"올해 세 달간 계약서에 도장 찍은 게 단 2건이에요. 그것도 월세. 이게 현실입니다."
서울 강서구에서 6년째 중개사무소를 운영 중인 김모씨(52)의 한숨 섞인 목소리다. 김씨는 "코로나 시절에도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다"며 "폐업하고 싶어도 권리금 3천만원을 포기할 수 없어 버티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상황은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공인중개사 시장 전반이 생존 위기에 직면해 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신규 진입자들의 급감세다.
3월 신규 개업 924명...통계 이래 첫 '1000명 붕괴'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신규 개업 공인중개사는 924명으로, 월간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5년 이후 처음으로 '1000명 선'이 무너졌다. 특히 3월은 봄 이사철을 노리고 개업하는 중개사들이 몰리는 시기임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수치다.
"올해 1분기 신규 개업자가 2720명에 그쳤습니다. 이 추세라면 연간 개업자 수가 1만명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어요."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작년 처음으로 1분기 개업자가 4000명 아래로 내려간 데 이어 올해는 3000명선마저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공인중개사 자격증 취득 열기도 급격히 식고 있다. 지난해 공인중개사 시험 응시자 수는 15만 4669명으로, 2017년 이후 처음으로 2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2020년 37만명에 달했던 응시자 수가 3년 만에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이제 간판만 달고 버티는 공인중개사무소가 대부분입니다." 서초구 D공인중개사는 "같은 건물에 있는 5개 부동산 중 2곳은 사실상 영업을 포기한 상태"라며 "형식적으로 문만 열어놓고 다른 일을 병행하며 근근이 버티는 중"이라고 전했다.
25개월 연속 줄어든 개업 중개사...전국 11만명 지키기 비상
더 심각한 문제는 개업 중개사의 전체 수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3월 기준 전국 개업 중개사 수는 11만 1613명으로 2023년 2월 이후 25개월 연속 감소세다. 공인중개사 협회는 이대로라면 몇 개월 내에 11만명 선마저 무너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허나 폐업하고 싶어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중개사들이 많다. 지난해 12월 1472명이 폐업한 것에 비해 올해 1~3월 폐업자 수는 각각 852명, 956명, 1028명에 그쳤다. 개업보다 폐업이 많아 전체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예상보다 폐업 속도가 느린 것이다.
"문 닫고 싶어도 못 닫는다"...권리금 회수 불가에 역설적 생존
"권리금이 묶여 있어서 폐업도 쉽지 않아요." 마포구에서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박모씨(48)는 "사무실 권리금 5천만원을 주고 들어왔는데, 지금은 누가 인수할 사람이 없어요. 그냥 문 닫으면 그 돈 고스란히 날리는 거죠."라고 토로했다.
이 같은 상황의 근본 원인은 부동산 거래량 급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부동산 거래량은 100만 6019건으로, 실거래가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6년 이후 최저치다. 특히 2022년과 비교하면 1년 새 8.8%가 줄었다.
서울 강남구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바닥이다,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올해 들어서는 그마저도 사라졌다"며 "고금리, 대출규제, 경기침체 삼중고에 매물은 넘쳐나도 구매자가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공인중개사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그동안 너무 많은 중개사들이 시장에 뛰어들어 포화 상태였다"며 "이번 침체를 계기로 시장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일부 공인중개사들은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전통적인 중개업에서 벗어나 부동산 컨설팅, 자산관리, 임대관리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 송파구의 B공인중개사는 "중개 수수료만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임대관리 서비스를 시작해 월 관리비를 받는 방식으로 전환 중"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공인중개사 시장의 침체가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정책연구원 원장은 "단기적으로는 시장 회복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며 "중개사들의 자발적 구조조정과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함께 나와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지금 폐업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야죠." 10년 이상 중개업을 해온 C공인중개사는 "중개사 시장도 적자생존의 시대가 되고 있다"며 "지금은 어려운 시기를 견디며 미래를 준비할 때"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부동산 거래 시장 회복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대출규제 완화, 세제 개편 등 다양한 시장 활성화 정책이 필요하다"면서도 "단일 정책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만큼 종합적인 접근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